대법, 원심깨고 日제약사 손 들어줘… 개량신약 부문 年 4조~5조 규모
당장 180여개 염 변경 약물 타격
업계 “국내 현실 무시한 판결… 정부-국회 입법통해 문제 해결을
대법원이 ‘염’을 변경해 개량신약을 출시한 것을 특허권 침해라고 판단해 국내 제약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제약사들은 오리지널 신약의 핵심 물질을 그대로 쓰면서 핵심 물질이 약효를 내도록 돕는 촉매제인 염을 변경시켜 개량신약을 만들어왔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사법부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당장 B형간염치료제 ‘비리어드’, 금연치료제 ‘챔픽스’ 등 오리지널 약품을 염 변경 방식으로 국내에 출시했던 제약사도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17일 일본계 다국적 제약사 아스텔라스가 국내 코아팜바이오를 상대로 낸 특허권 침해금지 등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아스텔라스의 과민성 방광치료제 ‘베시케어’를 염만 변경한 개량신약 ‘에이케어’가 오리지널 특허를 침해했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이 소송의 쟁점은 염 변경을 통해 오리지널 특허를 피한 약물도 특허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였다. 아스텔라스는 ‘베시케어’의 특허 존속기간 연장 등록이 만료되는 2017년 7월 이전인 2016년 7월 코아팜바이오가 개량신약 ‘에이케어’를 출시하자 소송을 냈다. 코아팜바이오는 다른 염을 사용해 약물을 개발했기에 특허 침해가 아니라고 맞섰다. 1심 서울중앙지법과 2심 특허법원은 모두 코아팜바이오의 손을 들어줬다.
하급심을 뒤엎은 이번 대법원 판결로 국내 제약업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국내 제약업계의 약품 개발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혁신신약 개발 △혁신신약을 변형한 개량신약 개발 △복제약인 제네릭 개발 등 3가지 축으로 추진돼 왔다. 이 중 개량신약은 4조∼5조 원 규모로 전체 제약산업(약 22조 원)의 최대 23%를 차지한다. 개량신약 중 상당수가 염 변경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으며 이 같은 방식의 약물은 국내에 180여 개에 이른다.
이번 판결로 염 변경 개량신약은 국내에 발붙이기 어렵게 됐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개량신약은 단순한 복제약과 다른데 그 차이점을 대법원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며 “개량신약 개발로 얻은 이익을 ‘종잣돈’으로 혁신신약 등 새로운 영역에 투자하고 있는 제약바이오 업계의 노력이 이번 대법원 판결로 주춤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변경 개량신약 개발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화이자제약 금연치료제인 ‘챔픽스’의 염 변경 약품은 국내 34개 제약사들이 출시하거나 준비하고 있다. 또 다국적제약사 길리어드의 B형간염치료제 ‘비리어드’에 대해서도 국내 제약사들이 염 변경 약품을 내놓은 상황이다. 한 제약회사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소송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기존 사업 부문을 접어야 할 판”이라며 “사법이 국내 제약업계 현실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앞서갔다”고 말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정부와 국회의 입법으로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200여 회원사를 둔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대법원 재판 진행 중 “염 변경 개량신약을 금지하는 것은 오리지널 제약사에만 유리하게 법률 해석을 하는 것”이라며 “국회 법률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출처] 동아일보-- 배석준 기자